9월 4일 오전에 들른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의 흥덕왕릉비 조각(약 가로 15㎝, 세로 20㎝)에 씌어진 한자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들 글자는 깨진 파편 위에 한 개씩 음각으로 돼 있다. 왜 통일신라 왕릉비에 ‘무역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한자가 새겨져 있을까. 그날 밤 신라 궁궐 터인 ‘경주 월성’. 국립경주박물관 북서쪽으로 길게 반달 모양으로 뻗어있는 이곳에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약 1200년 전(828년) 무역상인 장보고와 통일신라 흥덕왕의 만남이 있었던 바로 그 장소다. 당시 흥덕왕은 헌덕왕의 뒤를 이은 재위 3년째였다. 숭실대 김문경(역사학) 명예교수는 흥덕왕과 장보고의 만남을 ‘해양국가 부흥의 계기를 마련한 절묘한 만남’이라고 평가했다.
이같이 개혁군주로서 ‘흥덕왕’과 글로벌 개척정신을 지닌 기업가 ‘장보고’의 만남이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한국 개최를 계기로 장보고의 리더십을 재활용해야 한다는 주장(한창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있다. 장보고는 한때 중국에서 군인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제대를 한 무역상인 신분이었다. 통일신라 왕인 흥덕왕 눈으로 볼 때는 일개 장사꾼에 불과한 인물이다. 삼국사기는 이 무렵 상황을 ‘신라 사람 170여 명이 중국에 넘어가 양식을 구하려 했고 기근 때는 자식까지 파는 일이 생겼다’고 기록했다. 한창수 연구원은 “9세기 통일신라는 많은 재앙과 궁핍에 시달렸다”며 “우리가 겪은 외환위기(1997년)나 금융위기(2008년)보다 훨씬 더 위기감이 팽배한 사회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흥덕왕은 이같이 어려운 국가 경제 현실을 타파할 묘책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는 중국을 왕래하던 사람들로부터 당나라에서 무역상인으로 성공한 장보고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장보고도 평소 조국의 어려운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역사학)은 “당시 두 사람의 만남은 1960년대 산업화 시기 고 박정희 대통령이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을 인정해준 리더십과 비슷하다”고 해석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른바 ‘축소 재생산’으로 가난을 벗지 못하던 국가경제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시선이 곱지 않던 재벌의 역할까지 인정해 줬다는 것이다. 이후 대기업의 수출을 통한 ‘확대 재생산 사이클’로 침체된 한국 사회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는 평가를 받는 대목이다. 흥덕왕도 파격적으로 장보고를 불러 청해진을 만들고 해상로를 개척할 권한을 줘 무역을 통한 해상강국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결국 역사적 기록과 연구를 종합해보면 흥덕왕릉비의 ‘무역지인간’은 장보고를 지칭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9.10.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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