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년에 두 번씩 두 분의 은사님을 찾아 뵙는다.
설날을 앞둔 섣달 그믐날에는 묵은 세배를 드리고
스승의 날을 앞 둔 5월 14일에는 꽃을 달아 드리고 있다.
이 십여 년 전부터 해온 일이다.
올해도 스승의 날을 맞아 은사님들을 찾아뵈었다.
은사님들의 연세는 모두 여든 안팎이다.
만날 때마다 말씀의 소제가 다르다.
- 재임 시의 추억이며
- 손자들 재롱자랑을 넘어서
- 크고 작은 모임에 참여하여 등산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며,
- 경로당에서 고스톱 하시는 얘기로 이어지다가
- 근래에는 그도 저도 아닌 말씀인지라 듣는 마음이 심히 불편하다.
한 분은 몇 년 전부터 전신의 관절이 여의치 못해
약을 복용하고 계셔서 그런지 살이 많이 빠지셨다.
또 한분은 당신의 건강을 좋아 보이나,
사모님의 건강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드리면 한사코 하시는 말씀이 있다.
‘이젠 그만 오게.
자네가 제자들의 꽃을 받아야 할 나이 아닌가.
별로 해 준 것도 없지만, 지금까지 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할 수 없어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지금 대문 앞에 도착해 있습니다.
얼굴만 뵙고 그 자리에서 바로 나가겠습니다’라고
오히려 내 쪽에서 통사정을 해야 문이 열린다.
두 분을 뵙고 돌아오는 날은 괜히 마음이 울적해진다.
곱게 늙어 가시는 황혼의 아름다움보다는
왠지 쓸쓸한 뒷그림자의 안타까움이다.
나도 퇴직하면 곧 비슷한 모습이 될 것이라는 연민과 함께,
두 분 은사님들의 모습이 바로 나의 미래라는 생각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