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4.19, 영남일보]
말
(이숙희 수필가·계간 수필세계 발행인)
산수유 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골로 이틀간의 피정을 다녀왔다. 무엇엔가 쫓기듯 허둥지둥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고요한 기도의 삶을 살고 싶던 바람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피정의 주제가 ‘침묵’인 까닭인지 해가 일찍 진 마을은 제 먼저 침묵에 잠겼다. 간간이 꽃나무 사이로 일렁이는 바람소리만 들려올 뿐, 고요한 산골은 세상을 향해 활짝 열어두었던 문에 잠시 빗장을 지르고 침묵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피정의 프로그램은 연말까지 시한부 삶이라는 가정(假定)에서 시작되었다. 살아오면서 나를 행복하게 한 사람과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을 떠올려보라고 했다. 만 하루의 시간이지만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침묵으로 말을 거세하자 나에게 행복을 준 사람과 가장 큰 상처 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가족이었다. 그 행복과 상처는 언제나 한 마디 말의 씨앗에서 비롯되었다.
참 말이 많은 세상이다. 분별없는 말이 넘쳐날수록 세상은 시끄러운 법이다. 일주일 전에 끝난 선거에서도 온갖 말이 난무했다.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나선 국회의원 선거 출마자들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경쟁자의 흑색선전에만 집중했다. 입담이 걸출한 어느 한 출마자는 막말로 많은 파문을 일으키더니 결국은 그 말 때문에 발목을 잡히기도 했다. 그것은 비단 정치판만이 아니다. 유명 연예인도 분별없는 말로 구설수에 올라 공식사과와 중도하차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어느 단체를 가나 사람이 모인 자리라면 칭찬보다는 비난의 말들이 난무하는 것이 이 시대의 현실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은 알프스의 ‘카르타치오’ 봉쇄수도원에서 촬영한 영화다. 스크린에는 대사 한 마디 없이 수사들의 일상과 알프스의 사계로만 채워졌다. 언어가 잠재워진 그 곳에는 바람소리와 옷깃 스치는 소리만 들려왔다. 누구도 쉬이 들여다보지 못했던 수도자의 내밀한 침묵은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하는 어떤 말보다 더 깊은 언어가 되었다.
사람은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 삶의 중심에는 말이 있다. 말은 큰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잘 벼린 칼날이 되어 큰 상처를 주기도 하며 분쟁을 일으키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결국 이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은 말을 잘 가려서 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남아프리카의 바벰바족은 죄 지은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이 독특하다. 그들은 누군가 잘못을 하면 그를 마을 한복판에 세우고 빙 둘러서서 돌아가며 한 마디씩 말을 한다고 한다. 비난하거나 꾸짖는 말이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그의 선행이나 좋았던 일을 상기해 큰소리로 칭찬을 한다. 사람들의 말이 한 바퀴 도는 동안 고개를 숙였던 죄인은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돌아가며 그를 포옹하고 잘못을 용서해 준다고 한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비난이나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진심어린 칭찬으로 회개시키는 것이다.
가족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었듯 지금까지 무수히 뿌린 내 말의 씨앗을 생각하니 두렵고 아찔하다. 지금까지 무심코 한 나의 말에 혹여 누군가 상처 받은 일은 없었을까. 말에 진심을 실어주고 소통을 도와주는 동력은 상대를 위한 칭찬의 말이며 적절한 침묵일진대, 지금까지 내가 뱉은 말들은 어디서 서성이고 있을까. 어느 수녀님의 시 한 구절이 무시로 떠오르는 아침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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