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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죽장 2012. 4. 13. 15:07

[2012.4.13, 조선일보 만물상]

제비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제비는 제 살던 곳을 찾아오는 귀소(歸巢) 본능이 유달리 강한 철새라고 한다. 일본 어느 학자가 제비들에 표지를 달아 그중에 얼마나 돌아오는지 6년 동안 실험했더니 다 자란 것은 47%가 되돌아왔다. 짝과 함께 돌아온 경우도 여럿이었다. 제비 같은 철새가 수만리 남쪽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면 어김없이 고향을 찾아오는 것은 몸 안에 '첨단' 항법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철새 눈의 망막에 있는 어떤 단백질 성분이 햇빛을 받으면 지구 자기장(磁氣場)에 정확히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구는 거대한 자석 덩어리다. 그 자기장을 망막의 단백질이 읽고 위치와 방향을 파악해 원래 살던 집으로 가는 길을 일러준다. 나침반 바늘이 지구 자기장에 따라 남극·북극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훈이 '자전거 기행'에서 '새들도 사람처럼 본관(本貫)을 가져도 좋을 것'이라고 한 것도 철새가 지닌 집 찾기 능력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제비의 항법장치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꽃 소식이 한창인데 꽃보다 먼저 봄을 알렸어야 할 제비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기상청은 지난 3년 서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제비를 올해도 못 보지 않을까 애태우고 있다 한다. 서울엔 늦으면 5월에도 나타난 적이 있다니 기다려볼 일이긴 하다. 전국적으로도 2000년 ㎢당 37마리였던 제비 숫자가 지난해 19.8마리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제비가 우리 곁에 와서 살아가는 데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선 제비가 즐겨 먹는 벼멸구·딱정벌레·잠자리·모기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이 벌레들이 사는 늪지나 하천 농경지가 사라져 갈 뿐 아니라 있다 해도 농약·폐수 따위에 오염돼버렸다. 시골 논바닥까지 아파트가 들어설 정도로 주거 환경이 바뀌면서 제비가 둥지를 틀 처마 자체가 사라졌다.

▶1914년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마사'라는 이름의 마지막 나그네비둘기가 죽었다. 동물원 측이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부인 이름을 붙여 보살피던 새였다. 나그네비둘기는 한때 개체 수가 50억마리에 이르렀다는 북미 철새다. 이들이 한번 무리지어 날면 태양을 가려 사방이 깜깜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나그네비둘기가 급속히 멸종돼 간 것은 인간 탓이었다. 새가 깃들일 숲을 깨부수고, 고기와 깃털을 얻으려고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잡아들였다. 하나 남은 마사마저 죽자 지구상에서 나그네비둘기는 사라졌다. 흔한 것에 숨은 소중함을 깨닫지 못해 영원히 잃고 마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제비의 경우를 통해서도 보게 될까 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