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수필문학회 카페에서 옮겨온 글]
황진이의 남자들
-이 동 민 -
서양의 클레오파트라와 중국의 양귀비에 필적할 만한 한국의 미인은 누구일까. 나는 주저 없이 황진이를 꼽는다. 춘향이도 있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가공의 인물이니까 그리 무리한 선택이 아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주변을 서성거린 남자는 시저와 안토니우스이다. 모두가 영웅들이지만 권력지향적인 인물이다. 양귀비에게는 권력의 최고봉인 당 황제가 있다. 권력지향적인 안록산도 있었다. 그러나 황진이의 주위를 맴돌았던 사람은 권력을 누린 사람이기보다는 오히려 소외 당한 사람들이었다. 클레오파트라와 양귀비의 남자들과 달리 황진이를 호강 한 번 시켜주지 못한 남자들이다. 황진이를 기방으로 내몰았던 이웃집 총각도 상사병으로 목숨마저 잃은 만큼 나약하였으니 안토니우스나 안록산과는 비교도 안 된다.
전해오는 말대로 황진이가 황 진사 댁의 교양 있는 규수였다면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도 싶지만---, 어쨌든 그녀는 엉뚱하게 기녀의 길을 택하므로 나를 실망시켰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처녀적 황진이는 양반가문의 구중궁궐에서 현모양처의 수업을 받았다기 보다는 담 너머로 지나가는 총각에게 눈웃음을 지으면 교태를 부리지 않았나 싶다. 그가 남긴 정감 어린 시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웃집 총각과 그렇고 그렇다는 소문이 돌아 시집갈 길도 멀어지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기생이 되지 않았을까.
푸른 산 깊은 계곡을 내달리는 골짜기 물이라면 유행가 가사처럼 뜨내기 손님이 틀림없다. 그런 벽계수라는 사람의 소매를 붙잡고 유혹하는 솜씨가 가히 일품이다. 한번 흘러가버리면 돌아올 수 없으니 질탕하게 놀다 가세요, 라고 읽어지는데, 깊은 서정이 담긴 애정시로 칭송을 받는 것은 황진이로서 과분의 행운이 아닐까.
벽계수라는 분이 왕실의 귀한 분이라고 하지만, 조선시대의 왕족은 거개가 실권에 밀려나서 무위도식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기방을 찾아 허송세월을 하는 것을 풍류라고 하였다. 어쨌거나 기방에서는 고급 손님이 틀림 없다. 그런 벽계수를 단골로 붙잡으려는 황진이의 염원이 눈물겹다.
이후에 황진이는 장안에서 노래 잘 하기로 소문이 난 이사종이라는 분을 만난다. 관직도 선전관이라는 쾌 높은 벼슬아치이었다. 그 시대의 풍습대로라면 첩살이로 들어가서 정식으로 가족의 대우도 받지 못 하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계약 결혼이라는 기발한 제안을 하여 성공한다. 남자의 편에서 보면 경제적인 부담도 들겠다. 곁다리 가족을 두므로 아내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골치 아픈 일도 없겠다. 세월이 지나 애정이 식어지거나, 나이가 들어서 성적 욕구를 채워주는 효용에도 쓰임새가 없어질 때 물러나 주는 계약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 아닌가. 말하자면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꿈의 여인이라는 뜻이다. 남자들이 현실에서 구할 수 없는 여인을 가공의 이야기로 만들어서 대리 만족을 얻으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사종이라는 분은 어느 기록에도 찾을 수 없는 가공의 인물이라고 하였다.
황진이의 전설을 분석해 보면 성애 앞에 고개를 숙이는 남자를 부지기수로 경험하고 성의 위력을 과신하는 신도가 되었다. 기고만장해진 황진이는 30년 동안이나 여체를 멀리 해온 지족선사라는 분에게 도전장을 보낸다. 불쌍하게도 지족선사는 황진이의 주변 남자 중에 가장 나쁜 평가를 받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적막한 산사에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정취가 넘치는 밤에 얇은 옷이 물기에 젖어 맨 살이 그대로 드러난 옷을 입은 아리따운 여인이 찾아왔다고 상상해보자. 그것도 눈웃음을 치면서 교태를 곁들여 접근해 왔다면, 시도 읊고---, 내가 지족선사라면 백 번도 더 유혹에 넘어갔으리라.
원효대사는 일부러 물에 빠지므로 젖은 옷으로 요석 공주를 찾아가서 유혹한다. 마치 황진이처럼 성공한다. 원효대사는 조선 최고의 선사로 대접을 받는 반면에 지족 선사는 가혹하리 만큼 심한 비난을 받는다. 평가의 잣대가 아주 불공정하다. 지족 선사는 남자를 유혹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기녀에게 유혹 당하므로 황진이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 주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베풀어준 배려가 선사답다는 생각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박박과 부득의 설화에서도 관음보살의 미인계에 여자를 매정하게 몰아낸 박박을 창찬하기는 커녕 메마른 마음을 깨우쳐주는 부처님의 뜻을 읽어야 한다.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 하고 기고만장한 황진이는 아무래도 지족 선사보다 한 수 아래인 듯 하다.
화담 선생은 현실을 중시하는 유학자답게 황진이의 눈물겨운 유혹을 거부함으로 자신의 명예를 지켜낸다. 남자의 유혹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온 황진이가 느낀 좌절감은 얼마나 컸을까? 틀림없이 비참한 심정이었으리라. 그러나 황진이는 엎드려 절하면서 당신을 존경한다고 하였다. 기녀로서의 굴욕감을 슬쩍 감추는 임기 응변 술이 놀랍다. 생각컨데 화담 선생은 승리자의 기분이 되어서 황진이에게 기녀로서의 삶이 아닌 도학자로서의 삶을 길게 훈시하였으리라, 묵묵히 들으므로 화담 선생의 기품을 살려준 황진이가 화담 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황진이를 연구한 분들의 글을 읽어 보면 황진이를 안개처럼 감싸고 있는 전설적인 일화들, 말하자면 과대 평가된 거품을 걷어내고 나면 조선의 보통 기생들이 살았던 그런 삶을 살았다고 한다. 가난한 말년을 보내다 정말 거품이 스러지듯이 소문 없이 죽었다고 하였다. 황진이가 퇴기가 되어서 끼니를 거르면서 살아갈 때 벽계수와 화담을 위시한 주변의 남자들이 따뜻한 애정을 보내주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내 좁은 소견으로는 유학자가 아닌 지족 선사를 찾았다면 틀림 없이 쌀 한 가마니는 보내주었으리라고 믿는다. 황진이의 남자들은 풍류니 무어니 하는 가면을 쓰고 오직 자기의 욕심만 채운다. 그리고는 나 몰라라 하고 등을 돌려버린 사람들이다.
어쩌면 황진이는 그의 시가 말해주듯이 육욕적이고, 정념이 넘치며, 거짓이 없는 여자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좀 더 인간 본래적이고, 솔직함을 가졌을 것이다. 지족 선사의 인간다움을 몰라주고 화담 선생의 가식적 명분에 매료되었다는 것이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황진이가 불행하였다면 바로 이와 같은 이중성이랄까. 잘못된 판단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차라리 ‘이화우 흩날릴 제,’를 노래한 부안의 매창처럼 연약한 척이라도 하였더라면 좀 더 사랑 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의 연구에서 황진이는 조선 명종 때 불교가 발흥할 기미를 보이자 유학의 도덕적 우위를 선전하기 위하여 선택된 인물이었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화담과 지족선사 이야기는 허구이고, 유학자들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인간다운 시편을 남긴 황진이는 조선의 유학자에게 희생당한 가련한 여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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