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애편지"는
영남수필문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필가 '구활'님의 글입니다.
깊어가는 가을날
모든 분들의 가슴에 따스하고 풍성한 느낌 한뭉치씩을 드립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도 연애편지를 썼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예쁜 곳을 더욱 예쁘게 살짝 가릴 나뭇잎을 따러 나간 이브를 기다리던 아담이 먼저 썼을 것이다.
이브도 가만히 있진 않았겠지.
과일을 따러 움집 거처에서 멀리 떨어진 해변으로 나간 아담에게
잠에서 깨어난 이브가 간밤의 기억을 되살려 진한 편지를 썼을 것이다.
(중략)
조선의 한 선비가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그곳 처녀에게 띄운 편지와 답신은 연애편지의 압권이자 절창이다.
선비는 “마음은 붉게 화장한 미인을 쫓아가고 몸은 부질없이 홀로 문에 기대고 서 있네.” 라고 적어
하인을 시켜 수레를 타고 가는 미인에게 전했다.
수레를 세워 잠시 읽어 보더니 바로 답신을 보내왔다.
“수레가 무거워 졌다고 나귀가 화를 내니 그것은 한 사람의 마음이 더 실린 까닭일세.”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수작이냐.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글이다.
(중략)
연전에 간송 미술관에서 열린 조선 풍속화첩전에서 만난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이란 그림
혜원이 그린 풍속화는 등불을 든 젊은이 옆에 수줍어 보이는 처녀가 약간은 어색한 듯 담벼락에 서있는 그림이다.
화제(畵題)는 ‘월심심 야삼경 양인심사 양인지’(月沈沈 夜三更 兩人心事 兩人知)로
‘달빛이 흐릿한 밤, 두 남녀가 원하는 것은 두 사람 만이 안다’는 뜻이다.
(중략)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 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송찬호의 시 ‘찔레꽃’ 중에서)
연애는 이런 것이다.
그래, 사랑은 이런 것이다.
맺어지지 못하면 애가 타고 헤어져 만나지 못하면
이렇게 찔레나무 앞에 서서 망연자실 빛바랜 사기 사발 쳐다보듯 허무한 것.
태어난 것조차 후회해야 하는 정말로 허무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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