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추천 문학작품

유경희의 ‘사마귀’

죽장 2006. 10. 18. 15:45

  “서경에 이르기를 호문즉유(好問則裕)라고 했다. 묻기를 좋아하면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고 도량이 넓은 사람이라는 뜻이리라. 배움에 있어 부끄러움이나 체면을 따지지 않고 스스럼없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모르는 바를 질문할 수 있다면 어찌 그를 군자라 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질문하는자는 차라리 속이 편한 법이다. 입장을 바꾸어 끊임없이 질문을 받고 적절한 대답을 상대에게 즉시 해주어야 할 형편에 놓이게 된다면 그보다 더 딱한 일이 흔할까.


  큰아이를 웬만큼 키워 놓고 이제 끝없이 곤혹스러운 질문의 덧에서 반쯤 놓여났구나 하며 안도의 숨을 내쉴 겨를도 없이 작은아이로 인해 더욱 황당하고 집요한 질문의 늪에 빠져 버렸다. 둔한 지능의 어미는 그래서 고민 끝에 한 가지 묘한 꾀를 내었다. 즉, 질문으로 답을 해서 위기를 모면하자는 것이었는데 이외로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제가 한 질문에 제가 답을 하게 된 어린 녀석은 간혹 기상천외한 대답으로 주위를 포복절도하게 한다. 곤충박사가 되겠다며 곤충도감을 10여 권 정독한 결과 곤충에 꽤 박식해진 아이가 제 지식을 뽐내보려고 저녁 식탁에서 눈을 빛내며 질문을 시작했다.


  “엄마, 아빠, 형님! 사마귀는 짝짓기를 하고 나면 암사마귀가 수사마귀를 잡아먹는 데요, 왜 잡아먹을까요.”
  질문을 받은 세 식구는 동시에 입을 모아 되물었다.
  “왜 잡아 먹는데.”
  “그것도 모르세요. 그건요. 수사마귀가 짝짓기를 잘 못하니까 암사마귀가 화가 나서 잡아먹는 거예요.”
  이게 무슨 해괴한 얘기인가! 이제 중학생인 형은 눈물까지 흘리며 허리를 접고 웃었고, 어른 두 명은 수저를 든 채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아이고, 아이고, 한참 동안 앓는 소리를 냈다. 짝짓기가 무슨 전자오락게임쯤으로 아는 의기양양한 어린 곤충학자의 덕에 실컷 웃고 난 후 나는 남편에게 조용히 협박성의 말을 잊지 않고 건넸다.
  “내가 화가 나면 당신도 잡아먹히는 수가 있어요.”


  사마귀는 육식성의 곤충으로 어떤 종은 도마뱀이나 개구리, 작은 새까지도 잡아먹는다고 한다. 짝짓기 때의 습성 또한 특이해서 육식성이 강한 암컷이 수컷을 물어 죽일 뿐만 아니라 통째로 먹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머리를 먹힌 수컷은 반사적으로 짝짓기를 계속한다고 알려져 있다. 곤충에 대한 짧은 지식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암사마귀가 수사마귀를 잡아먹는 것은 산란을 위한 영양 축적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종족 번식을 위해 자신이 몸을 양분으로서 바치는 수사마귀를 생각하니 어려운 시대를 사는 보통의 아버지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아버지는 신이 주신 은행가”라는 서양 속담이 있듯이 우리는 모든 어려움의 해결사로 아버지를 대했다. 가족들이 원한다면 당신 몸까지 능히 깎아 줄 우리의 아버지들. 그런데 늘 받기에 익숙한 나머지 식구들은 자칫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아버지의 진을 뻬고 더하여 몸통까지 먹어치우는 패륜을 태연히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내조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웃으며 쉽게 대답했다. 남편에게 “당신이 벌어 먹이지 않으면 나는 굶어 죽어요.”하고 가끔 말해 주는 것이 나의 유일한 내조라고.
염천에도 한기가 느껴진다는 요즘의 남편에게 이런 철없는 아내의 말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을까. 얼음바람이 부는 냉랭한 거리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다 돌아오는 가장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를 변변히 전하지 못했다. 세 살 난 딸아이인 듯 투정하며 그의 가슴에 바늘을 꽂고 상처가 나면 약 대신 소금을 뿌려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리라.

  며칠 후 곤충의 짝짓기가 암컷과 수컷의 결혼이라는 것을 형에게 배운 작은 아이가 재롱을 떨었다.
  “수사마귀는 왜 바보같이 암컷에게 잡아 먹혀요. 내가 사마귀라면 절대 못 잡아먹게 혼내줄래요. 어머니가 수사마귀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글쎄-,어찌해야 할지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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