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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묻고

죽장 2005. 9. 14. 15:49

  오늘은 친구를 땅에다 묻고 온 날입니다. 그 녀석 내 불알친구지요. 시골의 한마을에서 동갑내기 3명이 태어나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께 다녔습니다.

 

  개구리도 잡고, 진달래도 꺾고...

  개울가에서 헤엄도 치고, 소도 먹이고...

  밭언덕에 자라고 있는 대추도 따먹고...

 

  그렇습니다. 낼 모래가 추석이니 그 시절 이맘때면 대추가 바알갛게 익었습니다. 우리들 꿈도 가을 날 대추마냥 익었습니다. 대추처럼 달콤한 꿈도 꾸었습니다.

 

  그런 녀석이 그만 갔습니다. 사랑하는 처자식을 두고 말입니다. 친구도 두고 말입니다. 마을 뒷산 양지바른 소나무 밑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싸늘하게 식은 시체 위에 하얀국화꽃잎을 뿌리면서 인생 오십년을 돌아보았습니다. 별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저 멍할 뿐이었지요.

 

  산에서 내려다보니 내 어릴적 자라고 뛰놀던 마을이 한눈에 보입니다. 빈집이 드문드문 을씨년스럽고, 유년의 추억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두어야 한다는 말을 절감했습니다.

 

  오죽하면 노모를 두고 갔겠습니까. 궁핍한 삶에 있어서 돈의 존재나 그 대단한 위력을 씹고 또 씹었을 것입니다. 더러는 세상을, 친구를, 친지들을 원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피곤한 육신의 주인이 마지막 차지한 자리는 몸하나 뉘일 공간이 전부였습니다. 그놈은 그걸 몰랐을까요?

 

  모두 부질없는 생각인 줄 알면서 하는 넉두리입니다. 친구를 묻고 온 오늘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