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의 터키여행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꺼리가 많지만 그 중 안탈랴에서 콘야를 거쳐 카파도기아로 가는 차안에서 느낀 점이 있다.
에게해를 끼고 거의 한나절을 달려 지중해 연안의 안탈랴까지 오는 길 내내 계속되고 있는 올리브 숲의 한없음에 저절로 혀를 내둘렀었다. 여름에는 고온에 비가 적고 겨울에는 비가 많고 따스한 지중해성기후가 올리브를 살찌우는 천혜의 조건인데 공감하였다. 올리브나무에, 올리브숲에, 올리브숲의 많음에 감탄하며, ‘대단하다’, ‘정말로 대단하구나’를 연발했다.
그랬는데 카파도기아로 가는 길은 올리브가 아니라 온 천지가 밀밭이었다. 눈길이 닿은 지평선 저쪽 끝까지 누런 밀밭 언덕이었다. 한 시간을 달리고 두 시간을 달려서 아까 보았던 밀밭 언덕을 넘어가면 또 처음과 같은 밀밭 언덕이 나타나고는 했다. 가도가도 밀밭은 늘 제자리에 있는 것 같고 다만 함께 가는 것이라고는 철탑과 전신주뿐이다.
이따금씩 양떼들이 길을 건너기를 기다렸다가 달리는 길옆에 삶을 차리고 있는 유목민 가족들의 남루가 한참동안이나 사라지지 않는다. 가재도구들이나 농기구가 올려져 있는 수레 앞에서 그들의 자식들이 의미 없는 낯빛으로 손을 흔들기도 한다. 이 단조로운 풍경에 겨워 졸다가 눈을 뜨면 여전히 밀밭이 계속되고 있다. 어쩌다가 밭과 밭의 경계인 양 올리브나무가 외롭게 지키고 있다. 농부들의 그림자조차도 보이지를 않으니 농사는 누가, 언제 짓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들판을 몇 시간이나 달려온 자동차가 씩씩거리며 산을 오른다. 아마도 토로스산맥을 넘고 있는가 보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는 돌산이 연속되더니, 갑자기 황량한 산중 마을이 나타난다. 사람들의 주거지 근방에는 스프링쿨러가 돌아가고 있어 풀들이 새파랗게 자라고 있다. 모처럼 푸른 나무들을 보는 듯하다. 사람의 색깔, 삶의 색깔은 밀밭과 같은 누런색이 아니라 녹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밀밭사이로 난 신작로가 다시 계속된다. 한 무리의 양떼들이 몰려 마른 풀을 뜯고 있다. 누군가가 저 녀석들 좀 보라며 손짓을 한다. 몸과 몸을 맞대고 비비듯이 움직이고 있다. 여름에는 동료가 더 시원해 질까봐 몸을 바짝 붙이고 있고, 겨울에는 동료가 내 체온으로 인하여 따스해질까봐 최대한 떨어져 지낸다고 한다. 잠잘 때도 그렇고 걸어갈 때도 그러하는 저들이야말로 짐승들 중에서 시기심과 질투심이 가장 많은 녀석들이란다.
경계가 없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밀밭길을 스쳐지나가면서 한 뼘의 땅, 한 이랑의 곡식이라도 더 가꾸기 위하여 다투고 있는 우리네 삶을 생각한다. 그리고 시기심과 질투심이 많다는 양떼를 보면서 나와 내 이웃들이 만들어가는 사랑과 미움을 생각한다. 또 길에서 태어나고 길에서 죽는다는 유목민 가족의 삶을 보면서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고독이란 단어의 사치스러움을 생각한다.
올리브 숲으로 이어진 길, 언덕을 넘고 또 넘어도 한없이 계속되는 밀밭길을 달리면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가난과 풍요를 생각한다. 푸른 삶의 터전을 가꾸기 위하여 광야를 가로질러 끌어오고 있는 물줄기를 생각한다. 그렇다. 그들은 한없이 이어지고 있는 메마른 길에 생명의 푸르름을 위한 물줄기를 숨겨놓고 있었다. 카파도기아로 가는 그 한없는 밀밭길에 푸르른 인정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