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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트로이!

죽장 2005. 9. 1. 17:24
내 상식으로 "터어키"하면 생각나는 것이 트로이전쟁, 트로이 목마가 전부였다.
터어키 도착 2일째 마침내 트로이행을 결행하게 된 것이다.
트로이 언덕에 오르기 전에 영화촬영에 사용했던 목마셋트가 전시된 곳으로 갔다.
명화는 화면으로 스쳐지나갔어도 목마는 여전히 시선을 끌고 있었다.

트로이전쟁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인류의 역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4개의 사과를 알아야 한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윌리엄 텔의 사과,
그리고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사과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벌어졌던 이 전쟁의 대강은 이렇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심판하는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비너스)에게 황금사과를 준 댓가로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헤레네를 트로이로 데려왔고,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을 움직여 트로이원정 연합군을 결성하게 된다. 트로이의 견고한 성문은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그리스연합군은 결국 오디세우스가 고안한 목마를 남겨두고 퇴각하였고 승리에 도취된 트로이군은 목마를 성안에 끌어들였으며, 목마속에 숨어있던 그리스군들은 성을 함락시키고 전쟁은 역전되었다.....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드', '오디세이아'를 통하여
영웅들의 서사시로 오래전부터 전해져내려오고 있는 이 이야기는
19세기 이후 허구로 인정하는 분위기였으나
슐리만에 의하여 발굴되면서 사실로 확인이 되고 있다.
1930년대 과학적 재조사를 실시한 블레겐은 트로이전쟁이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겹겹이 쌓였던 흙더미를 속에서
그 일곱번째 층이 BC1250무렵에 파괴되었음이 확인되었다.

트로이 언덕에 딩굴고 있던 잔해들
우물과 같은 백성들의 삶의 흔적
무너진 성터는 말이 없다.
손닿을 듯한 저만치가 바다였다니
그리스연합군과 막강 트로이군의 격전지가 눈에 선하다.
전쟁의 신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전쟁영웅들의 함성이며
여인들의 사랑이야기가 발길에 무심히 차이는 벽돌조각에
새겨져 있다.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를 채우고 있는 바다는, 저 모래사장은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까?
올리브나무를 흔들고 있는 저 바람은
그때 엿들었던 영웅들의 사랑이야기를 기억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