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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에서의 만남

죽장 2005. 7. 6. 14:38

때는 춘삼월 호시절, 삼라만상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글공부에 전념하던 이몽룡이 남원 땅을 스치는 춘풍을 참지 못하고 들창 밖을 힐끔거리다가

마침내 방자 녀석을 불러 대문을 빠져나왔다.

오작교를 건너 광한루에 올랐을 때,

규방에 들어앉아 수를 놓고 있어야할 춘향이가 그 시간에 맞추기라도 한 듯이 그네를 타고 있었으니

이것이 주인공 청춘남녀의 첫 번째 만남이다.

 

향단이가 살짝 밀어주니 그네가 스르르 미끄러져

앞으로 내닿으면 펄럭이는 저고리 고름을 흔들며 봄바람이 들어오고,

뒤로 물러나니 댕기 땋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린다.

늘어진 수영버들 사이로 오락가락하는 무엇인가가 이몽룡의 눈에 들어오면서 찌릿하게 전기가 통했다.

 

본래 사또 아들과 기생의 딸은 상호간에 부부로 맺어질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다.

아마도 이몽룡은 월매의 딸 정도 가지고 놀다 버려도 좋은 장난감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춘향의 입장에서도 사또자제를 평생을 맡길 서방으로 감히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산이거나 올라가지 못할 나무를 쳐다본 꼴이다.

어찌되었거나 이몽룡이 월매집의 담장을 넘었고 이들 청춘남여는 어울렸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이몽룡은 타고난 프레이보이 기질의 소유자였고,

춘향이의 몸에도 뭇 남자들에게 몸을 맡기는 화류계의 피가 흐르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느닷없이 남원사또 교체발령이 난 것이다.

이제 막 사랑의 싹을 키우고 있던 이들은 헤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양으로 향하는 이몽룡의 발걸음보다는

기약없이 님을 보내는 춘향의 마음이 더 쓰라렸을 것이다.

그렇게 헤어졌지만 양반자제 이몽룡은 해오던 과거준비를 계속하여 열심히 했고,

춘향이는 정처없는 기다림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새로 부임한 사또는 여성편력이 극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사는 뒷전인 체 기생점고부터 하였다.

이 장면이 변사또와 성춘향의 운명적인 만남이다.

정절을 바친 한 사나이를 잊지 않고

일부종사키로 한 춘향의 결심을 꺾지 못한 변사또는 심기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마음먹은 것이라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온 권력자는

상처 입은 자존심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생일날에 천하의 이벤트를 준비하게 된다.

 

남월골로 부임하지 않았다면

중앙부처에서 판서나 정승까지 승진했을지도 모르는 변학도이다.

춘향이와의 만남으로 인하여 일순간에 탐관오리로 낙인찍혀

봉고파직될 변학도의 운명을 누가 알았으랴.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올라간 이몽룡은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고 전라도를 순행하는 암행어사의 명을 받았다.

어사 이몽룡의 속마음은 민정을 살피는 일보다

춘향이를 만나는 일이 더 급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고을을 뒤로 하고 곧장 남원골로 향했다.

춘향이에게 마패를 보여주며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원 가까이 오니 들리는 소문이 흉흉했다.

사또 수청들기를 거부한 춘향이가 목에 칼을 차고 옥에 갇혀 있으며,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사또가 내일 자신의 생일날에 물고를 내려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한시바삐 구해내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먼저 장모인 월매부터 만난다.

딸년이 죽게 생긴 이 마당에 출세해서 데리려 오기는커녕

거렁뱅이가 되어 찾아왔으니 허파가 뒤집히고도 남았다.

그러나 춘향이는 문전박대하는 제 애미와는 달랐다.

이몽룡과 춘향이 모녀와의 만남은 극적인 장면의 연출을 위하여

시치미를 떼고 속이고 속아주고 한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

동헌마루에는 사또의 생신잔치상이 걸판지게 차려졌다.

‘금잔에 넘치는 향기로운 술은 백성의 고혈이고-’ 하는 시가 등장하고

뒤이어 ‘암행어사 출두야’ 하는 소리가 관아를 울렸다.

탐관오리와 암행어사의 만남,

죽음직전에서 만난 애인,

그것도 암행어사로 출세한 서방님과의 만남이야말로

가장 신파적인 만남이다.


우리의 고전 춘향전의 본래 줄거리를 아끼는 사람들이사 곱지 않은 시선일 수 있다.

춘향전을 다시 읽으면서 만남을 비틀어 보니 너무나 운명적인 만남이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들이 내용을 형성하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이를테면 ‘운명적인 만남’이란 말이다.

 

누구나 만남을 통하여 그 자신의 일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인생은 연극도 아니고 재방송도 안되기 때문에

우연과 필연이라는 만남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가끔씩 ‘그때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때 그 사람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운명적인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니,

그 아닌 다른 만남이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를 그려보는 일은

한가할 때의 시간보내기로 아주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