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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등병

죽장 2005. 6. 27. 09:57

지난 금요일(24일)에는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김천에서 무궁화호를 탔습니다.
객차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얼룩무늬 옷을 입은 군인들이 빽빽히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으로 '차를 잘못 탔는가?'하면서 확인했지만
나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군인들과 일반인들이 함께 타도록 되어 있었는가 봅니다.

 

작대기 하나인 대한민국 이등병 계급장이 자랑스럽고
깎은 밤톨같이 또렷하게 생긴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 군인의 옆이 내 자리였고,
앞에도, 뒤에도, 건너편에도 이등병들이니
온통 이등병들로 모자리를 해둔 것 같았습니다.

 

마침 때가 때였는지라 슬쩍 물었습니다.
동료의 가슴에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진
최근 전방부대에서의 사건을 아느냐고?
또, 앞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우리 아들도 이등병인데" 하면서
자기 옆에 앉은 이등병의 손을 놓치않는 것이
기특해서 죽겠다는 눈치였습니다.

 

30년전 내 신병시절의 추억이 다가오는 거 있지요.
첫휴가 나오는 기쁨이며,
차창을 스쳐가는 친구며, 연인의 모습이며,
드디어는 차창밖으로 미련없이 스쳐지나가는
33개월간의 세월이며...

 

그랬습니다.
그때 내 눈에 다가온 충격은 푸르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계절도 바로 이맘 때, 모내기를 갖 끝낸 연두빛 들판은
이렇게 맑고 투명한 색깔이었든가?
아, 나에게도 이런 때가 있다니 하는

그때 가슴을 채웠던 벅찬 느낌이
하나도 지워지지 않고 생생합니다.
정신을 차리니 대전입니다.


KTX로 환승하기 위해 내려야 했습니다.

"조국에 바친 그 기간이 복이 되기도 하고, 화가 되기도 할 것이야.
모든 것이 자기 하기 달렸지" 하면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도 손을 내밀었습니다.
내 손이 아프도록 힘주어 잡고는 흔들어주었습니다.
"네, 알았습니다"하던 말이 또 내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밤톨같은 이등병이,
함께가는 대한민국의 이등병들이 믿음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