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고사리

죽장 2005. 6. 17. 15:38
 

     “요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깨잎을 따는 일이 전부야.”

     “일은 좀 적당히 하면 안되나요.”

     “놀면 뭐하노, 심심해서 하는 긴데.”

     “매일 뜰깨잎을 딴다면서 이건 언제 뜯었어요.”

     “새벽에 뜯은거지.”

     “젊었을 때도 일 많이 한다고 미움까지 받았으면서.”

     “내사 일하는 낙으로 사는거 아이가.”

     “손은 왜 그래요.”

     “처음엔 푸른색 물이 들더니 언제부터인가 검은 색이 되더라. 보기 싫어 씻고 씻어도 사라지지 않아 이젠 아예 그냥 둔다. 언젠가는 없어지겠지. 해가 뜨면 일하러 나가야 하니 시간이 있어야지. 어두운 새벽에 산에 올라가서 앞치마가 넘치도록 고사리를 꺾어서 내려오면 동산에 해가 솟아오른다. 고사리는 꺾어본 사람이 아니면 그 재미를 몰라. 이슬에 젖은 대지를 뚫고 힘차게 솟아오르는 고사리순을 만나면 어찌나 반가운지. 고사리순이 여기저기 돋고있는 밭을 만나면 흥분으로 손까지 떨리는 걸. 꺾어쥐기가 차라리 아까울 정도지.”


  누님은 시꺼먼 비닐봉지를 끌어당겨 풀어 헤친다. 깨끗하게 삶아서 주먹만하게 뭉친 고사리 덩어리가 소복하다. 고사리를 내려다 보니 괜히 목구멍이 막혀온다. 체신머리 없이 눈믈방울이 떨어질까봐 고개를 돌렸다. 그 바람에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낮은 촉수의 전등불이 비치는 누님의 손이 약간은 부은 것 같다. 자세히 보니 정말 손이 말이 아니었다. 손톱밑은 물론이고 손바닥의 잔주름 사이에도 까아만 물이 들어있다. 헤질 때로 헤진 누님의 손, 생각없이 웃기만하는 누님의 얼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누님의 마음, 이것이 바로 부처나 천사의 모습이 아닐까.


  재너머로 시집간 누나의 소식은 가끔씩 풍문으로 들려왔다. 자형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말도 바람결에 들었었다.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누님은 일하는 손을 멈추는 법이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달래는 방법이라고는 일 외에 없었는지 모른다. 비오는 날은 비옷을 입고 콩밭은 멘다고 한다. 등에 아이업고 어깨에는 꼴망태를 매고 소먹이러 가더란다. 누님은 마음이 엄마를 닮아서인지 손도 엄마를 빼어 닮았다. 손모양도 물론이지만 솜씨도 닮았고 따스한 감촉까지도 닮았다. 엄마 살았을 적엔 엄마가 나를 귀여워 했었는데, 엄마 죽고 난 지금은 누님이 그 자리를 메워준다.


  일어서는 나를 앞에 두고 다정하게 일러준다.

     “이 고사리 아부지, 엄마 제사 지낼 때 사용해라.

      꼭 싸서 바람들지 않게 두면 몇 년도 괜찮아.

      갈 때도 차 조심하고.”

  주는 고사리를 뿌리치지 않고 가져오기는 했지만 먹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누님의 고사리는 비닐봉지에 꼬옥 꼭 싸서 두어야지. 제삿날 고사리가 필요하면 사서 써면 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