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전번 설날 세배 갔을 때 앉으시는 모습이 불편해 보여 걱정하는 저에게 ‘나이 들면 다 그렇지’ 하며 웃으시던 얼굴이 영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퇴직 후 자주 가시던 등산도 뜸해졌다니 이를 어쩝니까. 선생님의 세월이 벌
써 그렇게 되었음이 안타깝습니다.
지난 2월 하순, 교장으로 승진 발령을 받고 우선 전화부터 드렸었지요. 비록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음성이었지만 ‘축하하네. 정말 축하하네’ 하며 저보다 더 기뻐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까까머리 제자였던 저의 세월도 흐르고 흘러 이렇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월요일 아침 운동장 조회시간에 선생님께서는 줄의 중간쯤에 서있는 저에게 다가와 교무실로 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잔득 주눅이 들어 찾아간 저에게 ‘토요일날 왜 그랬느냐’고 다그치셨지요. 별 기억이 없었던 저는 한참 후에야 반말을 하는 1학년 후배를 지도했던 일을 생각해내고는 항변을 했지요. 선배에게 반말하는 건방진 녀석이었다고 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당장 그 얘 아버지에게 가서 사과하고 오너라. 나는 너를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날 이후 ‘너를 믿는다’는 그 짧은 말씀의 화살 한대가 가슴 깊숙이 박혀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고 있습니다. 시골출신 고학생으로 어렵게 대학생활을 할 때도 그랬고, 조국의 최전방을 지키는 초병으로 군대살이 3년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아니, 제대 후 교직에 첫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는 그 말씀이 더욱 더 절실했습니다. 선생님이 날려 보낸 화살을 가슴에 꽂고 살아오면서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가슴을 향해서도 꼭 같은 화살을 날려 보내었습니다. 지금은 그 아이들 중 몇 명이 믿음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선생님께서 저를 믿었듯이 저도 그들을 믿고 있습니다.
지나온 저의 세월 속에는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도 있었고, 실의에 젖어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어둠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믿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저에게는 채찍이었고, 용기이었고, 더러는 햇빛이었습니다. 제가 가르친 아이들도 서로를 믿으며 살아야 한다는 단순한 말 한마디가 채찍으로, 용기로, 햇빛으로 작용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선생님! 부임해온 학교 언덕에 오래된 벚나무가 몇 그루 있습니다. 그 벚나무에 꽃이 활짝 피는 날 선생님을 모셔서 좋아하시는 약주한잔 대접하겠습니다. 꽃그늘에 앉아 한때나마 선생님과 저의 세월을 되돌려 과거를 회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승진을 축하한다는 전번의 말씀에 ‘교장 노릇 잘하리라 믿는다’는 말씀이 생략되어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마주앉은 저에게 큰 소리로, 더 큰 믿음을 가르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