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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혼

죽장 2005. 6. 15. 14:57
 

  역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512년 이후였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지증왕 13(512)년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고려에서는 행정 구역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 살게 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었다. 조선시대 태종 때인 1417년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모든 섬에 공도정책을 폈으나, 이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가 잦아지자, 숙종 때 어부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 받고 일본 어부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


  그 외에도 기록들은 더 있다.

  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은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울릉도사적기」를 펴냈고, 정상익은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된 「동국지도」를 만들었다. 또 김자주는 「성종실록」에, "섬 서쪽 7, 8리 남짓한 거리에 정박하고 바라보니 북쪽에 세 바위가 나란히 서있고, 그 다음은 작은 섬들이 있고, 다음은 가운데 섬이고, 가운데 섬 서쪽에도 작은 섬이 있는데, 모두 바닷물이 통한다."고 독도를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동단의 섬 독도.

  외로운 섬 독도를 생각하면서 먼저 사이버상에 떠있는 내용들을 일별해보니, 신라의 이사부 장군이 독도를 정벌했고, 고려시대에 백성을 옮겨 살게 했으며, 조선시대 안용복, 장한상, 정상익, 김자주에 의하여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하고도 남음이 있다. 과거부터 이랬으니 딴소리하지 말라고 목청을 높이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이고 미래이다. 독도를 사랑하는 현재의 마음과 행동이 중요하다. 독도의 혼을 살려나갈 사람이 생각난다.


  그 한 분이 수필가 L교장이다.

  울릉도에 발령을 받아 몇 년간 근무하면서 틈틈이 쓴 작품들을 「마가목 붉은 열매」라는 표제를 붙여 수필집으로 출판하였다. 그후 나에게는 ‘마가목’은 울릉도에 자생하는 약용식물로 붉은 열매가 열리는 나무로 상식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L수필가는 울릉도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울릉도를 알리고, 울릉도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사귀면서 울릉도 마인드 확산에 진력하고 있다. 그를 대하면 이른 봄 느낄 수 있는 울릉도 산나물의 맛과 향이 베어난다.


  또 한사람 H군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울릉도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육지의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였으며, 그때 내가 학급담임을 맡았었다. 졸업과 동시에 몸은 서로 헤어졌지만 철따라 오징어 소식, 호박엿 소식들을 전해오고 있다. 그러면서 입버릇처럼 울릉도에 가서 울릉도의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울릉도에 있심더”하는 소리를 전해올 것 같다.


  당연한 것은 굳이 말하지 않는다.

  말하면 오히려 그 당연함이 손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도 당연한 사실 중의 하나이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우리 땅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나팔 불어대는 무리들이야말로 자기네 땅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반증임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독도를 노래 부르자.

  독도를 찬양하는 작품을 빚어내는 일이 중요하고, 귀거래사를 부르며 기꺼이 울릉도로 낙향하는 삶의 방식이 빛을 발한다. 우산국을 노래한 L수필가의 주옥같은 작품이며, 울릉도 어디쯤에 뿌리내려 살면서 독도를 바라보고 있다는 H군의 소식이 기다려진다. 올 여름 다녀가라는 초대장이 오면 얼씨구나 하고 갈 참이다. 우리 땅 독도에 발끝을 닿게하는 일이 여의치 않으면 독도방향의 하늘이라도 한참동안 바라보고 와야겠다. 바다를 날고 있는 갈매기에게 이사부 장군의 안부를 묻고 싶다. 성인봉에 걸린 흰구름에게 안용복도 여전하더냐고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