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커피가 불편해졌다

죽장 2022. 1. 11. 12:02

  카페에 들어서면 눈치를 보거나 망설여진다. 전에는 그냥 ‘커피!’ ‘아메리카노!’ 하면 됐지만 요즘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에 주문이 복잡해서 그렇다. 겉으로 태연을 가장하고 재빨리 메뉴판을 살피면서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고 있음을 자각한다. 그래도 커피는 나의 오랜 친구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커피에 설탕과 프림의 달콤하고 고소한 조합만이 존재했던 그때 내 나이 20대였다. 다방에 몰려가 음악을 듣고, 권투나 레슬링의 중계방송도 보며 사회초년생 시절을 보냈었다. 커피하면 따스한 아메리카노가 전부였던 때는 쉰 살을 넘고 있었다. 설탕과 프림이 있는 커피 믹스를 외면하고 블랙커피를 찾으며 진정한 커피맛을 느끼고자 하였다. 그렇게 또 20여 년을 살아오면서 인생의 쓴맛을 몸으로 익히는 잠깐 사이에 프랜차이즈 커피집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커피 한잔의 양이며, 가격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지면서 불편함도 증가하였다.

 

  커피집이 ‘카페’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낯이 설어졌다. 이제는 친구나 연인을 만나 커피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분위기의 변화와 함께 커피를 구성하는 내용물도 달라졌다. 달콤한 맛 뿐 아니라 쓰거나 신맛을 찾을 때도 있다. 기분에 따라 강한 맛과 부드러운 맛을 선택하기도 한다.

  커피의 선택에 건강상의 문제도 따른다. 커피가 몸에 좋다는 연구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커피’하면 으레 따뜻한 것이었지만 뜨거운 커피가 식도암 확률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마시는 시간이 아침이냐, 낮이냐, 저녁이냐에 따라 불면증이나 숙면을 방해하기 때문에 섭취를 피하거나 디카페인으로 마실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 설탕이 해로운가 하면 프림이 해롭기도 하다.

  카페모카나 프라푸치노와 같은 달콤한 라떼 메뉴를 주문하면 휘핑크림을 올려드릴까 묻는다. 또 설탕이나 시럽의 양을 묻는다. 선택은 계속된다. 테이블에서 마실 것이냐 들고 나가서 걸어가면서 마실 것이냐에 따라 머그잔과 일회용 컵이냐가 결정된다. 빨대를 사용할 것이냐 아니냐, 종이컵의 뚜껑은 어쩔 것이냐의 문제도 있다. 이 모두를 종합하여 내가 마실 한잔의 커피를 결정해야 하니 어찌 불편하지 않으랴.

 

  커피잔에 올라탄 나의 인생 열차는 달콤한 청춘에서 쓴 중년을 거쳐 신내 나는 노년으로 달렸다. 달고 쓴맛에 시고 떫은 맛까지 복합된 커피맛이 되고 말았다. 언제부턴가 커피맛에는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괴로운 희로애락의 감정이 담겨졌다. 커피는 앞으로도 진화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마침 시간이 있어 집 가까이 있는 카페에 갔다. 메뉴판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카라멜 마끼야또’, ‘바닐라 빈 라떼’, ‘콜드 브루 화이트 비엔나’를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린다. 마음을 정하고 결재를 했다. 진동벨을 받아들고 구석자리에 앉았다. 큰소리로 수다를 떨고 있는 젊은 여성 몇이 보인다. 창가에는 노트북을 받쳐놓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도 보인다.

  여전히 낯선 풍경이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불어내며 커피잔에 입을 댄다. 여유와 낭만이 목구멍을 넘어가니 젊은 시절이 희미하게 피어오른다. 또 한 모금 넘기니 늙은이 하나가 맞은 편 자리에 앉는다. 불편해도 극복해야 할 현실이다. 커피는 여전히 오래된 친구이자 평생을 살아온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