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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에게 국민이 낸 시험문제

죽장 2017. 3. 15. 19:36

[2017.3.15, 조선일보] [김기봉의 히스토리아 쿠오바디스]

[38] 대선 후보들에게 국민이 낸 시험문제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 안으로는 국민이 두 쪽으로 갈라졌고, 밖으로는 북한, 중국, 미국, 일본에 둘러싸인 사면초가(四面楚歌)다. 20세기 초 직면했던 위기가 백 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도래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국사는 국난 극복의 역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늘의 한국이 단군 이래 최대 전성기라고 자화자찬했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어렵게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우리는 다시 후진국으로 전락하느냐, 아니면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5월에 치를 대선이 중요한 이유가 대한민국이 망하느냐 흥하느냐를 결정할 선택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통해 선진국으로 도약해서 국민 행복을 성취한다는 장밋빛 희망을 갖고 출범했다. 하지만 그건 백일몽이었다. 어쩌다 우리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조선시대 과거(科擧)의 문과는 주로 왕이 직접 출제해 정치에 관한 계책을 묻고 답을 적게 하는 책문(策問)으로 시행됐다. 이번 대선에서는 국민이 대선 후보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이 처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동아시아 역사를 보면 수많은 역사 공동체가 번성하다가 사라졌다. 오늘날은 중국, 일본, 베트남, 몽골, 한국의 다섯만이 국가로 존속해 자국사를 갖고 있다. 한때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흉노, 말갈, 만주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가 왜 망했는가?"보다는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제국을 유지했는지?"를 밝히기 위해 '로마제국 쇠망사'를 썼다. 역사에서는 강한 나라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나라가 위대하다. 한국인이 온갖 역경 속에서도 이른바 오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요인은 뭘까? 큰 나라를 외교적으로 섬기는 사대(事大)가 생존 전략 아니었을까? 전통 시대에는 중국에 대한 조공 외교, 현대에는 미국의 경제 원조와 군사 동맹. 이것들이 자주독립국가로서는 부끄러운 역사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우리의 과거다.

"우리는 과거를 잊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과거를 잊으면 식민지로 전락하든지, 아니면 말갈족과 여진족처럼 멸망한다. 국가 존망의 위기 앞에서 대선 후보는 이 책문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고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