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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쥐의 꾀

죽장 2010. 3. 19. 18:05

늙은 쥐의 꾀(原題 : 效嚬雜記) / 고 상 안

  옛날에 음식을 훔쳐먹는 데 귀신이 다된 쥐가 있었다. 그러나 늙으면서부터 차츰 눈이 침침해지고 힘이 부쳐서 더 이상 제 힘으로는 무엇을 훔쳐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 젊은 쥐들이 찾아와서 그에게서 훔치는 기술을 배워 그 기술로 훔친 음식물을 나누어 늙은 쥐를 먹여 살렸다. 그렇게 꽤 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쥐들이 말했다.

  "이제는 저 늙은 쥐의 기술도 바닥이 나서 우리에게 더 가르쳐 줄 것이 없다.”

  그리고는 그 뒤로 다시는 음식을 나누어주지 않았다.

  늙은 쥐는 몹시 분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 마을에 사는 한 여인이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서 솥 속에 넣은 다음 무거운 돌로 뚜껑을 눌러놓고 밖으로 나갔다. 쥐들은 그 음식을 훔쳐먹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때 한 쥐가 말했다.

  "늙은 쥐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

  모두가 "그게 좋겠다"고 하고는 함께 가서 묘안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늙은 쥐는 화를 발끈 내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나에게서 기술을 배워서 항상 배불리 먹고살면서도 지금까지 나를 본체만체했으니 괘씸해서라도 말해 줄 수 없다. ”

  쥐들은 모두 절하며 사죄하고 간청했다.

“저희들이 죽을죄를 졌습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앞으로는 잘 모실 테니 방법만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늙은 쥐가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일러주마. 솥에 발이 세 개 있지? 그 중 하나가 얹혀 있는 곳을 모두 힘을 합쳐서 파내거라. 몇 치 파 내려가지 않아 솥은 자연히 그쪽으로 기울어질 것이고 그러면 솥뚜껑은 저절로 벗겨질 것이다.”

  쥐들이 달려가서 파 내려가자 과연 늙은 쥐의 말대로 되었다. 쥐들은 배불리 먹고 돌아오면서 남은 음식을 가져다가 늙은 쥐를 대접했다.

  아, 쥐와 같은 미물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 있어 서겠는가! 이신의 계책이 노장 왕전의 심사숙고함에 미치지 못했고,¹ 무현의 지모가 충국만 못했으니,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사리 판단이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치는 다만 전쟁터에서 병사를 부리는 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나라를 다스리는 경륜도 젊은이가 어른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진나라 목공이 "어른에게 자문을 구하면 잘못되는 일이 없다”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나라가 되어 가는 꼴을 보면 국권은 경험도 없는 어린아이에게 맡기고 늙은이들은 수수방관하며 입을 꼭 다문 채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어쩌다 요긴한 말을 했다 하더라도 도리어 견책이나 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일을 앞에 말한 쥐의 일과 견주어 보면, 사람이 하는 짓이 쥐가 하는 짓보다 못하니,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註 : 1) 진나라의 젊은 장수 이신이 용기만 믿고 60만 대군을 요청한 왕전을 겁쟁이라고 비웃으며, 20만 군대를 이끌고 적진으로 진격했다가 패한 고사가 있다.

고상안(高尙顔, 1553∼1623)
호는 태촌(泰村). 조선 선조 9년 문과에 급제하여 함창 현감을 지냈다. 저수지 둑을 쌓아 함창과 상주 농민들에게 크게 혜택을 주었으며 농민들은 그 업적을 기려 공덕비까지 세웠다. 작품으로‘농가월령가’와‘효빈가’가 유명하며, 문집으로는〈태촌집〉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