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일영의 '모래시계'를 읽고
[독후감]
모래시계.
영화나 드라마로 우리 주변에 닿아 있는 모래시계가 아니라
인생의 모래시계임은 작품 내면에 숨겨진 코드을 이해한 후에야 알 수 있다.
진지하게 읽어 내려가야 비로소
가난했던 시절, 젊은 시절을 보낸 후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음을
소동파의 목소리를 빌려
『모래시계』라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금언과 만나게 된다.
작가의 모래시계는
첫사랑 처녀의 시점에 머물러 째깎째깎 소리내며 움직이고 있다.
누군들 첫사랑이 없을까.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 그래서 더욱 그리운...
독자를 스스로의 첫사랑으로 이끌어 행복하게 해준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작가는 아주 우연히 그 소녀를 만나고 만다.
청명한 하늘 가득 순정으로 자리 잡고 있던 오랜 그리움 덩어리가
실망의 먹구름으로 변해 있음을 확인한다.
아, 나에게도 첫사랑 소녀가 있었지.
멈추지 않는 모래시계가 만든 현실.
그제서야 가끔 첫사랑 소녀의 근황을 풍문으로 들으면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내 가슴을 노크한다.
수 십 년을 기다리던 기회가 성큼 다가왔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만날까? 만나지 말까?
작품은 독자를 달콤한 추억 속에서 꺼내어 현실로 안내한다.
시간은 무엇인가?
상황이 달라지면 마음도 변하는 것.
한간의 목마도를 다시 바라보니, 말은 어디가고 말안장만 보인다며 무릅을 치는
소동파가 다가온다.
그렇다.
서산으로 지는 해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인생의 늘그막에서 돌아보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지난날의 과오가 보인다.
사과해야 하루 사람은 떠나버렸다.
『내 죄는 용서를 비는 기도로써 덮어버리고,
그의 아픔은 아카페의 가면을 쓰고 외면했다.
나는 고해라는 말로 된 방패 뒤에 숨었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고백한다.
그 말은 내가 남기고 떠나갈 발자국의 모습을 생각해보라는 속삭임이 아닌가.
수필은 나이든 사람이 쓰는 문학이라 했던가.
작가는 작품의 말미에 또 한번 마음을 흔들어준다.
목을 벨 것 같은 자성도 모래 속에 묻고 새로운 햇살을 받으며
천연덕스럽게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고-.
첫사랑의 꿈에서, 인생의 미몽에서 깨어나 바라본다.
어! 모래시계의 잘록한 허리로 모래알들이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