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추천 문학작품

나비의 낮잠(김월희, 퍼온글)

죽장 2009. 4. 14. 10:23
사람이란,
무용해 보이는 것에서도
의미를 창출해
깊이를 더할 줄 아는 존재다

낮잠에도 품격이 있다? 공자는 낮잠을 즐기던 제자 재여에게 "넌 똥 같은 존재야!"며 호되게 몰아붙였지만, 낮잠도 무엇을 얻느냐에 따라 '고품격'이 될 수 있다.

장자의 낮잠을 보자. 어느 날 잠깐 꾼 낮잠에서 그는 나비가 되어 흐드러진 봄꽃 사이를 너울너울 흥겹게 날아다니는 꿈을 꾼다. 그러다 문득 깨어난 그. 대개의 사람은 거 참 묘하다며 한 판 기지개에 훌훌 털어냈을 꿈이건만 역시 장자였다. 쓸모없다는 낮잠을 자고 나서는 지성사에 길이 남을 묘한 물음을 던졌다.

"혹시 나비인 내가 지금 사람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장자의 물음은 말장난에 불과할 수도 있다. 향유는 고사하고 생활 자체가 팍팍한 일상에서 "내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내가 된다"는 꿈은 사실 망상에 가깝다. 저명인사가 잔 잠이라 하여 높이 평가되는 것은 아닌 법, 누가 잔들 낮잠은 그저 낮잠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장자의 낮잠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후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낮잠의 뒤끝에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통념의 전복을 촉구하는 묵직한 물음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그 물음 하나로 게으름의 표상에 불과했던 낮잠이 순식간에 인류의 소중한 지적 자산으로 탈바꿈되었다.

훗날 '나비의 꿈(蝴蝶夢)'이라는 이름까지 부여 받은 장자의 낮잠. 여기에는 선과 악, 옳음과 그름,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 등과 같은 모든 인위적인 대립을 극복하고자 했던 그의 지향이 오롯이 담겨 있다. 낮잠은 그 자체로 그에겐 유용한 것도 또 무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 낮잠은 앞뒤에 무엇이 오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매순간 다르게 구성될 따름이었다.
재여는 낮잠의 앞뒤에 아무 것도 놓지 않았지만 장자는 자신의 낮잠 뒤에 나비인 자신이 사람 꿈을 꾸고 있을 수도 있다는 물음을 놓았다.

그 결과 재여는 공자의 호된 꾸지람을 불러 왔고 장자는 역사의 후한 평가를 불러 왔다. 장자의 낮잠 뒤에 연이어 배치된 '나비의 낮잠'이 한낱 낮잠일 뿐인 낮잠에 아연 헤아리기 벅찬 깊이를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이런 식으로 그 속이 깊어가는 존재이다. 그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며 삶을 소모하는 존재만은 아니다. 낮잠처럼 무용해 보이는 것에서도 의미를 창출하여 그 깊이를 더해갈 줄 아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기계처럼 같은 일을 매일같이 반복할지라도, 사람은 기계와 달리 반복되는 작업에 의미를 부여하며 일상의 깊이를 더해갈 줄 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역사를 배우고자 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장자의 낮잠처럼, 거기에는 엷은 일상에 두터운 의미를 입혀준 사례와 방도가 넉넉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여 역사와 꾸준히 만나는 이들은 금전적인 형편과 무관하게 일상이 풍요롭고 삶이 여유롭다. '빵'으로만 채워지지 않기에 그들의 일상은 다채로우며 '수'로 환원될 수 없기에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다시 봄이다. 속세의 사정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올해도 어김없이 매화가 만발했다. 매화뿐 만이 아니리라. 온갖 꽃들이 예의 화려함을 머뭇댐 없이 뽐내리라. 그 사이를 '장자-나비' 또한 어김없이 날아다닐 터, 지금은 눈 크게 뜨고 귀 기울일 때이다.

  반복되는 봄에 또 일상에 의미의 깊이를 더해줄 '장자-나비'들이 보이는가? 그들의 펄럭대는 날개 소리는 또 어떠한가! 그들이 있어 우리의 삶이 역사가 될 수 있으리라.